임덕용 선배님의 이태리 돌로미테 푼타 디 오베레테스 조난 구조 체험기

관리자 | 2014.05.07 17:09 | 공감 0 | 비공감 0

임덕용 선배님의 이태리 돌로미테 푼타 디 오베레테스 조난 구조 체험기

 


▲ 필자를 구조해 준 이와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던 유명 산악스키어 프랑코 존코(가운데)


‘아내의 하얀 지프차의 타이어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한쪽만이 아닌 4개의 타이어가 초콜릿 조각 떨어지듯 조금씩 깨져 나가고 있었다. 4개의 타이어가 거의 깨져나가도 차는 그냥 가고 있었다. 공포에 놀라서 눈이 떠졌고 무서운 꿈을….’

 

4월 12일 토요일, 새벽 4시 30분 일어났다. 어제 저녁 장비 점검하며 스키에 부착하는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해 몇 번이고 지하 창고 장비방에 가서 챙길까 말까 망설이며 잠을 설쳤기에 간단히 빵을 먹으면서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5시 반에 집으로 오기로 한 프랑코 죤코 (Franco Gionco)가 5시 18분에 왔다. 갑자기 서둘렀다. 3월에 같이 한국에 다녀온 후 나보다 더 우리말로 “빨리 빨리”를 많이 외치는 사람이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스키 아이젠 생각이 났다. “빨리 빨리”라고 입만 벌리는 사람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용기와 내 특유의 게으름(?) 산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없어도 되겠지’했다. 한 시간 후 발 세날레스에 도착했고 서둘러 장비 착용을 했다. “아 참, 스키 아이젠을 안 가져왔네, 피켈과 아이젠은 가져왔는데.” 혹시 필요할 때 나만 없으면 창피할까 미리 거짓말을 했다. 프랑코가 “봄철이면 스키 아이젠이 필요한데”하며 내 산 경력을 높여주듯 위안 아닌 위안을 해 주었다.

 


▲ 추락 루트. 사진에서와 달리 현장은 경사 50~60도에 이르러 가파르다.


그날의 꿈은 악몽이었다 .

6시 30분, 스키를 신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날씨 변화가 무쌍한 날이라 당초 등반하려던 산은 고도가 높아 대상지를 푼타 디 오베레테스(Punta di Oberettes)로 변경했다. 해가 뜨기 전이고 구름이 많은 편이라 산은 매우 음산했고 머릿속에 계속 스키 아이젠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없이도 더 험한 산, 더 위험한 얼음 지대를 많이 다녔는데’하며 더 무식하고 더 미련해지기로 했다. 경사가 많이 급해지고 눈보다는 겉이 완전하게 크러스트 되어있어 스키 스톡의 끝 부분도 잘 안 들어가는 부분도 있었다. 오늘 올라가는 산의 주변을 많이 올라 이미 수십 번도 더 정면, 좌우에서 보던 산이라 산정 주변이 경사가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스키를 벗어서 배낭에 메고 아이젠을 신고 가야지 했다.

 

넓은 쿨르와르보다는 조금은 좁지만 빠르고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오르기로 했다. 거의 한 시간 반을 속도 내며 쉬지 않고 올라서 사진도 찍고 차도 한 잔 마실 겸 배낭을 벗었다. 마침 멀리 밑에서 3명이 오른 사람들이 있고 뒷산에서 해가 오르고 있었다. 해만 뜨면 빠른 시간 안에 사면의 얼음 표피가 녹을 것이고 등행이 훨씬 쉬워진다. 활강은 10시경이기 때문에 신이 준 활강 상태로 변한다. 살짝 녹은 눈이 아주 부드럽고 스키에 잘려지는 눈의 깊이가 10cm 정도인 상태이다. 촬영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출발하니 ‘빨리 빨리’ 올라간 프랑코는 이미 급경사를 오르고 있었고 내가 경사진 곳에 도착하니 뭐라고 소리를 쳤다.

 

밑에서 올라오던 3명은 이미 경사가 급해지기 전에 스키를 벗고 스키 씰 밑에 아이젠을 장착하고 올라오고 있었다. 프랑코도 이미 나를 기다리며 배낭을 벗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쉬는 게 아니라 스키 아이젠을 착용했나 보다. 아마 나에게 위험하니 조심해라 아니면 스키를 벗고 아이젠을 신으라고 했을 것 인데 무정한 바람이 안전을 태우고 ‘빨리 빨리’ 가버린 것 같다. 아주 잠깐 고민했다. 배낭을 벗고 아이젠을 신어야 할 정도는 아닌데…. 아직 스키 씰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정도인데… 뭐 이정도 가지고…. 그러고 4번을 10~15m 간격으로 지그재그 턴을 하며 조심이 올랐다.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올라가기 싫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위험 속에 있다는 것을 몇 번 턴을 하며 오르며 오를수록 느껴졌다.

 

발 아래를 보았다. 바위가 3개 보였다. 거의 붙어 있었다. 더 기분이 나빠졌다. 스키 날에 의지하며 한번만 더 턴을 하고 스키를 벗기로 했다. 추락하면 바위로 직선으로 갈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왼발을 크게 벌리고 오른발을 V자로 최대한 벌렸다. 경사가 인수봉 대슬랩 수준이라 매우 조심했다. 몸이 너무 경직되고 있었다. 벽에서 추락 바로 전에 느낌이었기에 더 조심했다. 실수했다는 판단이 섰다. 두 발을 벌리기 전에 스키 날로 크러스트 된 사면을 깨고 더 다질 걸이라고 후회했다. 발을 움직이기 뭐해 스키 스톡 두 개를 크게 벌려 추락에 대비했다. 왼발을 움직일 차례이다. 왼발을 들며 스키의 뒷축을 튕기듯 차면 스키 앞부분이 떠오르면서 발 앞을 틀어 신속하고 안전하게 오른편 스키 옆에 두기 쉽다. 왼쪽 스키가 떠서 오른발에 붙는 순간 오른 스키 날이 미끄러지며 슬랩에서 추락하는 엎드린 자세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 구조 헬기가 도착 후 탑승하고 있다.


“벽에서 추락 전, 바로 그 느낌이 엄습했다”

45년간 벽 등반 시 많은 추락은 안 했지만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스키를 신고는 아주 짧지만 여러 자세로 추락 경험이 있어 제동에 자신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모든 방법이 동시에 시도되었다. 스키 날로 제동, 장갑 낀 손으로 얼음을 파며 홀드를 잡아 보려는 방법…. 눈앞의 스키 스톡을 잡으면 피켈처럼 쓸 수 있는데 하는 순간 스키 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며 속도가 줄었다. 바위 슬랩 위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위가 세 개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순간적으로 아래를 보려고 했다. 두 번째 바위에 부딪히면 즉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음이 아닌 바위 위라 추락 속도가 순간적으로 아주 잠깐 줄자 몸이 뒤집혔다. 필사적으로 몸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등 뒤의 배낭과 헬멧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좋은 징조란 생각이 들었다. 몸의 각도를 다시 틀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헬기처럼 스키가 하늘과 같이 보였지만 불행하게 빠른 속도로 뒤집히며 머리가 뭔가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고 스미스 김용엽 사장이 선물한 내가 제일 아끼는 안경이 부러지며 고속 촬영을 해서 슬로우 모션 영상을 보듯 튕기는 게 눈 바로 앞에 보였다. 머리가 튕기고 몸이 튕기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 몸이 또 뒤집혔다. 바위 긁히는 소리가 아닌 게 설벽이란 생각이 들었고 또 스키가 하늘과 같이 보였다. 방향이 바뀌었고 두 번째 바위에 부딪힐 시간이 지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바위로 가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추락 중 스키가 다른 발목을 쳐서 부러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에 항상 활강하듯 두 무릎을 마주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다. 마지막 찬스란 생각이 들었다. 스키로 눈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하늘에 있는 스키를 눈으로 밀었다.

 


▲ 사고 후 현장을 지나던 스키어들에게 구조를 요청해 터진 이마를 지혈하고 있다.


몸이 섰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과 같은 자세로. 그러자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어딘지 모르지만 대략 피나는 곳을 더듬으며 여기저기 막아보았지만 손이 머리의 어디에 있는지 감을 못 잡겠다. 순식간에 벙어리장갑이 피로 완전히 젖었다. 오른손 감각이 없고 축 쳐져 있었다. 지혈이 우선이라 왼손으로 머리를 계속 여기 저기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어서 모르겠다. 25년간 허리 좌골 신경통에 몇 년 전 얻은 목 디스크가 이번 추락 중 충격을 받아 거꾸로 휘어 고질병이 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왔다.

 

오른 손은 목 디스크로 중지 끝이 항상 저리고 있어 암벽 등반 중 특히 디에드르, 레이백에는 쥐약이었다. 오른 팔이 감각이 없는 것도 방금 추락으로 갑자기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또 나오며 기분이 좋아졌다. 팔을 몇 번이고 움직여 보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축 쳐져 있었다. 문제는 혼자는 지혈을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머리에 쓰고 있던 울과 카본사로 만든 그리벨 심레스 모자 샘플을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다. 배낭을 벗고 지혈할 도구를 찾으려고 했는데 배낭이 없는 것을 알았다.

 


▲ 지혈 후 구조해준 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위를 쳐다보니 공포의 두 번째 바위는 완전 벗어난 설벽에 스키 뒤 날이 스키화 발꿈치까지 박혀 있었다. 그리고 약 40m 위에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얼른 시계를 보았다. 잠시 고민했다. 혼자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미친 척 많이 다친 척 살려달라고 도와 달라고 소리 지를 것인가. 내가 살기 위한 마지막 작전 시작은 아침 7시 43분이었다.

 

“아유또(aiuto)! 아유또!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프랑코!”를 몇 번이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혼자 스키화를 스키에서 분리시키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지만 나쁜 일은 빨리 알리라고 하지 않던가. 많이 다친 척 하고 고개를 숙이고 왼손을 머리에 대고 있으니 정말 생각하는 사람 조각이 되었다. 한참 후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더 아픈 척했다.

 

두 손을 스키로 의지해 박으며 발로 킥 스텝하며 내려오는 소리였다. 방금 전 “챠오” “안녕” 인사하고 지나친 사람이었다. 내 옆에 오자마자 “오우 맘마 미아(mamma mia·오 우리 엄마)” 하며 배낭을 벗으며 구급통 안에서 우선 가제를 꺼내 피 나는 부분에 대어주어 그제야 터진 곳이 이마라는 걸 알고 가제를 손으로 최대한 잡았다. 붕대를 꺼내 한 개를 다 감아 주었다. 그에게 여유 있는 척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 카메라를 꺼내 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 샤모니에서 만난 대한산악스키협회 회원들이 아르장티에르에서 신설과 크레바스 사이로 스키 활강중이다.


“아유또! 아유또!” “오우! 맘마미아”

그때 두 번째 사람이 내려오더니 똑같이 “맘마 미아”한다. 그 역시 빠르게 배낭을 풀어 붕대를 주는 순간 그의 헬멧이 튕기며 끝없이 내려가는 게 보인다. 내 몸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매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헬기를 부르는 게 좋겠는데 불러도 되는지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헬기 비용이 얼마나 나올까가 걱정이었고, 위로 올라가 소식이 끊긴 프랑코에게 어떻게 연락하는가 걱정이었는데 다시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친구에게 연락했고, 지금 내려오고 있다”며 핸드폰으로 구조대를 불렀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독일어로 산의 이름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20분 정도 후에 온다고 합니다”

 

그에게 고맙다고 환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 놀란다. “당신 경험이 많은 사람이군요. 안 놀라셨나요?” 그래서 “내 사고 현장과 당신들의 구조 상항을 한국의 산악인들에게 알리려고 한다”고 하니 더 놀란다. 그리고 서로 통성명을 했다. 그때 프랑코가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경쾌한 소리라 그가 아이젠을 신었다고 판단했다. 역시 노련하다고 감탄했다. 역시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스키는 이미 배낭에 메고 스키화에 아이젠을 신고 있었다. 그가 내 옆으로 오자 사람들이 상황 보고를 하고 프랑코가 나를 가리키며 “그는 초보자가 아니고 나 보다 더 전문 알피니스트이며 35년 전에 마테호른 북벽과 카라코람 거벽에 오른 사람”이라고 자기변명 비슷하게 떠들었다. 자기가 초딩이를 데려오고 또 혼자서 올라간 이유가 있다는 듯. 서로 인사를 하며 악수를 하는데 “프랑코 죤코”라고 하니 두 사람이 동시에 “우와~” 한다.

 

그 중 한 사람이 안경을 벗으며 “오우, 죤코. 당신에게 35년 전 산 스키를 배웠어…. 임이 북벽과 히말라야에 있을 때”하며 인사를 하자 조난 장소가 절친을 찾는 파티장이 되었다. 간단한 대책 회의를 했다. 헬기가 빨리 나를 픽업하기 위해 착륙이 용이한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프랑코가 자신의 털 귀마개를 붕대 위에 덮어주고 스키를 벗겨주며 걸을 수 있냐고 했다. 오른 팔이 아무런 감각이 없어 심각한 것을 제외하고는 걸을 수 있었다. 내 배낭과 스키 스톡, 깨진 안경을 다 챙기며 “당신 물통은 아래로 내려가 찾기 힘든데 어쩌지요?”한다. 한 사람이 내 왼편을 부축하고 덜렁이는 오른 팔을 옷 안에 끼우고 조심이 내려갔다.

 


▲ 병원에서. 이태리 병실은 보통 4인실이며 침대는 환자가 누워서 모든 각도 조절하며

간호사 호출 등 편의 시설이 있는 게 기본이다. 볼자노 병원은 산이 잘 보인다.


10분 이상 내려왔는데 좀 더 헬기 착륙이 쉬운 곳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프랑코가 좀 쉬었다 가자고 제안하며 “스텔라(아내)에게 전화했느냐”고 물어서 안 했다고 하니 자기 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주었다. “어, 난데 내가 전화기를 차에 두고 와서 프랑코 전화로 걸었어.”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니야?” 분명 놀란 목소리이다. “아니. 무슨 일 생겼으면 내가 전화 했겠어? 팔을 조금 다쳐서 지금 병원으로 가려고, 병원에 도착하면 전화해요” “네에. 조심히 내려오세요” 밝은 목소리이다. 뭐라고 전화했냐고 해서 전화 내용을 통역해주니 “당신 정말 차분하고 대단한 분이군요”한다.

 

차분히 걸어서 다시 10분 이상 내려와도 헬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장 초조한 사람은 프랑코, 눈치를 챈 루이스가 “걱정하지마, 두 번째 전화했을 때 이미 이륙했다니.” 추락 후 날이 점점 나빠지며 안개가 끼고 있었고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안전하게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한 명은 멀리 보이는 자기 헬멧을 찾으러 가도 되냐며 묻고는 스키에 달고 온 씰 때문에 잘 활강은 못하지만 내려갔다. 매우 얇은 긴 팔 옷 3개만 입고 있어 이제부터 보온이 필요해서 배낭에서 얇은 프리마 로프트 재킷을 반만 입자 자기의 다운 옷을 꺼내주겠다 해서 거절하며 고맙다고 했다. 배낭 안의 여유분 물병을 꺼내려 하니 프랑코가 콜라를 준다. 달콤한 수액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니 처음으로 살았다는 실감이 났다.

 

은근히 걱정이다. 시야가 점점 나빠지고 헬기가 날아 올라올, 시야가 그나마 좋은 홀이 조금씩 더 좁아지고 거의 닫힐 것 같았다. 지혈약은 처방 못했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렸고 쳐진 팔이 걱정이었지만 고통이 없는 것만해도 다행이라 주차장까지 걸어 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바람마저 점점 세지고 있어 바람 반대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있으니 옆 사람이 팔을 못 끼워 덜렁거리는 보온 재킷의 빈 팔을 가슴에 넣어주고 꼬옥 껴안아주었다. 내려가서 자신의 헬멧을 찾아 온 사람이 우리 옆에 도착 환호를 하는 순간 헬기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를 껴안고 있던 사람은 큰 키를 반듯하게 세우고 헬기 구조 시 요청 신호인 두 팔을 머리위로 V자로 올리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자세를 취했고 프랑코와 다른 사람들은 흩어진 장비가 헬기 프로펠러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모두 모아서 누르며 앉았다. 헬기가 바로 내 옆에 스칠 듯 서며 두 명의 구조대가 다가왔다. 걸을 수 있다고 설명하니 우리에게서 멀리 간 헬기가 순식간에 다시 온다. 나 보고 먼저 타라고 해서 남은 일행들에게 다시 카메라를 주니 배터리가 끝났는지 렌즈만 열렸다 닫히길 반복해서 다시 달라고 해서 받고 헬기에 타며 남은 친구들에게 엄지 손을 치켜세워주었다. 이때가 8시 33분.

 


▲ 국내에서는 필요 없는 눈사태 탐지용 비콘, 탐침봉, 눈삽 등의 장비도 산악스키에서 필수다.


추락사고 30여 분만에 헬기로 구조돼 병원 이송

내 스키와 장비는 프랑코가 집으로 가져다주기로 했다. 내가 타자마자 구조대 두 명이 탑승하고 헬기는 완전히 시야가 안개로 덮인 구름 속으로 비행을 한 후 잠시 후 파란 하늘로 떴다. 근 30년간 등반했던 돌로미테의 아름다운 산들이 작은 창으로 보인다. 그제야 팔꿈치를 차분히 만져 보니 팔꿈치 뒤로 막대기가 한 뼘이나 나와 있었다. 옆 구조대원에게 보여주니 일지에 쓰기 시작했다.

 

보통 헬기가 오면 줄을 내려야 할 상황이면 안전요원을 먼저 내려 보내고 헬기가 잠시 멀리 대기한다. 그 사람이 조난자들의 확보 상태를 재점검한 후 무전을 하면 헬기가 다시 와서 의사와 약품 가방을 내려주고 다시 적당 거리를 두고 대기한다. 환자가 놀라지 않게 긴장을 풀고 프로펠러에 의한 낙석이나 눈사태 방지를 위해서이다. 의사의 긴급 처방 후 환자를 실어야 할 상황이면 헬기가 와서 제3의 대원과 함께 침대 등 장비를 내려주고 다시 멀리 간다. 환자 옮길 준비가 끝나면 다시 헬기가 와서 환자만 싣고 병원으로 철수 후 나머지 대원들을 데리러 다시 온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20분 이상을 걸어서 내려간 덕에 시간을 많이 단축했다.

 

헬기가 우리 집 바로 위로 날아 병원에 내리자마자 구급차가 있었고 다른 헬기가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 백 번도 헬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을 가족들과 보고 살았는데 나 혼자 가족들 모르게 헬기에서 내릴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미 병원내이지만 차로 조용히 응급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이 또 대기하고 있었고 발자국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병원 시계가 보였다. 8시 57분.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자 여의사가 나를 앉히고 모자와 붕대를 풀자 또 피가 쏟아져 내렸다. “오우 노우.” 엄마가 젓 먹이 아기 달래듯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나를 안정시키며 바늘로 꿰매기 시작하자 옆의 간호사가 주사를 다른 이마에 놓는 것 같았다. 3번 바늘이 들어갈 때까지 몸이 절로 떨릴 정도로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다.

 

헬기에서는 이마의 통증이 줄고 있을 때 구조대원이 옆에서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나라, 주소를 물으며 쓰고 있었다. 하지만 헬기 소음으로 작성이 불가능했었다. 누군가 스키화와 장갑 등을 시작으로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장갑이 피로 젖어 말라있어 잘 안 벗겨지자 내가 가위로 잘라도 된다고 했다. 암벽에 뒤집혀 부딪히며 엄지손 위가 양쪽 모두 찢어져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20대 초반의 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 코앞에서 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에요. 다음에 산에 가실 때 또 쓰셔야지요.”

 


▲ 돌로미테 푼타 디 오베레테스에서 산악스키를 즐기고 있는 스키어들.

카메라 배터리도 확인 하지 않고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지 못했다.


금발의 파란 미녀들이 2명이 친절하게 옷을 벗겨주는 것을 누워서 즐기고 있는데 몸에 잘 달라붙어 있는 심래스 팬티는 안 벗겨 주었다. 찌그러진 초콜릿 팩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배에 힘을 주었다. 어깨도 넓게 보이게 하려고 반듯이 폈다. 부러진 팔 가죽을 처음으로 보았다. 가죽은 안 터지고 12~15cm 정도 뼈가 길게 튀어 나와 있었다. 누드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네 개의 손이 온 몸에 심전도기계 등을 내 피부를 자극하며 빠르게 부착했다.


피자에 모차렐라 치즈와 여러 먹거리를 배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음흉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맛있는 이태리 피자가 먹고 싶다는 음흉한 생각이…. 칭기즈칸의 늙은 말 근육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못 본체 하지만 볼만한 것 다 본 것 같았다. 고맙게도 몸이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여러 금발 덕이 아니어도 덜덜 떨리기 시작하자 따뜻한 담요가 덮이고 공포의 여인들을 떠난다. 팬티 안을 제외한 모든 구멍(코, 귀, 발가락 사이까지) 안까지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닦아주는 전신 마사지까지 받은 후 말이다.

 

새로 들어온 의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침대가 빠르게 움직이며 당신의 모든 소유물은 보호자에게 전달하니 걱정 말라고 한다. 승강기로 층이 이동되고 남자 의사와 남자 간호사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여러 구석구석 레이저 촬영이다. 피자 판을 오븐에 넣은 것 같다는 생각에 또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간호사가 미친 사람 보듯 한다. 허리 위까지 내려 온 긴 머리에 수염. 터진 이마에 튀어나온 팔꿈치…. 그리고 다시 병실로 옮겨지고 팔을 만지는 것을 보니 정형외과인 것 같다. 몇 번 팔을 조심이 틀려고 하자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났다. 아프냐고 묻기에 팔을 트니 많이 아프다고 했다.

 

다른 간호사가 들어오며 다시 빠르게 침대가 이동한다. 이동 전에 추우냐고 물어서 춥다고 하니 더 따뜻한 담요를 봉투에서 꺼내서 잘 덮어준다. 불가마 속에 들어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마취실로 가는 것 같았다. 이들은 위급 상황이 아니면 가능한 마취제를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보호자 승인이 나야만 마취를 한다.


갑자기 방안 가득 여의사가 웃으며 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팔을 슬쩍 보더니 “나를 믿으세요?”라고 묻는다. 안 믿는다고 하면 거대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아무 저항 못하는 벌거벗은 나를 눌러버릴 것 같았다. “믿는다”하니 담요 상의를 벗기더니 다시 여러 심전도기계 같은 것을 예쁜 여간호사가 젖꼭지와 가슴 여러 부분을 슬쩍 자극하며 부착한다. “마취 주사는 언제 놓나요?” 하고 물으니 “마취 주사는 없어요. 당신을 조금만 편하게 해드릴께요”하며 이번에는 아주 다정하게 웃는다. 다시 나에게 “나를 믿으세요”하는 순간 “네” 대답 소리가 나기도 전에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팔을 구부려 버렸다.

 


▲ 퇴원 다음날이 결혼 28주년 기념일이었다. 사고 후 사흘 만에 부활해 귀가 후 가족사진을 찍었다.


3시간여 의식 잃어 아내 목소리에 깨어나

어렴풋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병원 도착하면 전화하기로 했다는 기억도 안 난다. 멀리서 조용하게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아내가 천사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죽었나 생각이 들자 갑자기 힘이 났다. 의식이 돌아왔다.

 

아내가 슈퍼에 간 사이 프랑코가 딸 유리에게 내 장비를 주고 병원으로 갔고, 아내와 병원에서 만나서 기절한 나를 기다리다가 갔단다. 3시간 이상 기절해 있었고 3~4명의 여러 의사가 심장, 뇌 등 여러 검사를 하며 의식이 돌아오길 기다렸단다. 의사들이 깨우면 당황하니 여의사의 부탁으로 아내가 들어가 조용히 불러보라고 했단다. 아내가 의식을 회복한 나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고 잠시 나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다.

 

목이 매우 말랐다. 내 옆의 남자 간호사가 “목이 마르시죠?”하기에 고개만 끄덕거리니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어도 시원하게 답을 해 줄 상황이 아닌 것을 아는지 “아이스크림, 딸기, 오렌지, 레몬?” 하더니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금방 나타났다. 오렌지라는 내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한 손에 오렌지 하드가 있었다. 80년대 초,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과일 통조림같이 달콤하고 시원한 액이 스르르 하며 목으로 넘어갔다. 다 먹으니 막대를 얼른 숨기더니 물까지 한 잔 더 준다. 아내가 들어와서 대신 고맙다고 인사 하며 돈을 주려하니 환하게 웃으며 거절하며 즐겁게 일하기 시작한다. 산소 호흡기와 여러 호스가 몸에서 빠져 나가는 기분 나쁜 시간이 지나자 입원실로 옮겨졌다.

 

4인 방이다. 아내는 면회시간이 끝나 나가야 한다. 필요한 게 뭐냐고 해서 어린애처럼 오렌지 하드라고 하니 사다주고 귀가했다. 이번에는 아껴가며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6시면 저녁 식사가 공급된다. 그리고 보니 새벽 4시 반경 빵 하나와 하드 두 개 먹은 게 전부였다. 음식 냄새가 나니 배가 매우 고파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 식사까지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지금은 물만 마셔도 토할 수 있다며 아내가 병실 바로 앞에서 가져다준 물병과 컵도 가져갔다. 이태리 병원에서는 환자용 물은 항상 얼마든지 무료로 가져갈 수 있게 여러 장소에 배치되어 있다. 중환자실 남자 간호사가 주변 눈치를 보며 아이스 하드와 물을 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의 미소의 장난기가 고맙고 밤새도록 나를 배부르게 해 주었다.

 


▲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진 필자.


45년 산행 경력에도 예견된 사고였다
나의 이번 사고와 구조는 예견 된 것이었다. 악몽을 꾼 것은 잘못이 아니다.

 

●첫째 따뜻한 봄부터 6월 초면 낮에 녹았다가 밤에 영하로 내려가 눈의 겉은 겨울과 달리 항상 얼어있다. 산악스키 장비 중 필수인 스키 아이젠을 안 가져간 것이다.

 

●둘째 남들이 스키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르는 것을 보고도 ‘괜찮겠지, 나는 경험이 많으니’하며 과신을 했다는 점이다.

●셋째 과감이 아닌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키를 벗어 배낭에 메고 아이젠을 신었어야 했다.

 

●넷째 산행을 시작하며 전화기가 무겁다고 차에 두고 올라갔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추락하는 나에게 오지 않았고 프랑코는 계속 올라갔다면? 추락 후 안개와 눈이 더 많이 내려 내 몸이 눈으로 덮였다면? 나는 고산은 아니지만 눈이 다 녹은 7월에나 발견?

 

●다섯째 전날 저녁 카메라 배터리를 체크하며 이 정도면 3분의 2는 남았으니 날이 춥다고 해도 30~50장은 촬영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 5~6장만 촬영되었다. 헬기를 타면서와 헬기 안, 응급실의 긴박한 상황을 촬영할 수 없어서 매번 절실하게 후회했었다.

 

●여섯째 카메라 화소도 전날 문서 촬영에 사용하느라 최소 수준으로 두고 산행 전 최대 화소 촬영을 못했다. 하지만 잘한 점도 있다. 추락 시 추락 할 아래를 보았고 두 번째 바위를 피하려고 노력한 점, 추락을 하면서 최대한 제동을 위해 노력한 점. 추락 후 평소 같으면 혼자 해결하려고 했겠지만 구조를 해달라고 소리친 점. 헬기를 불러달라고 요구한 점 등.

 

45년 벽 등반을 했다고 자랑만 했지만 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알프스 등반 안전 10계명은 이렇다.

 

① 출국 전 꼭 여행자 보험이라도 들어야 한다.

 

② 등반 현지에서 들 수 있는 산악보험을 꼭 들고 현지 구조대 전화번호를 암기하자. 이태리 모든 사고 구조 번호는 118이다. 34년 전 악우회 3대 북벽 등반 시에도 들었는데 최신판 등반대가 현지 보험료를 아끼면 절대 안 된다.


③ 여권 복사나 긴급 연락망을 영어로 작게 방수 포장하고 배낭이 아닌 몸에 지녀야 한다. 배낭은 아무리 모든 벨트를 잘 착용해도 추락 현장에 따라 몸에서 분리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추락자의 고산화도 신발끈이 잘 메어져 있는데 신발 안이 비어서 발견되곤 한다. 인체 안은 추락 시 무중력 상태가 되며 모든 근육이 이완 될 수 있다.

 

④ 등반을 하기 전에 몇 번이고 장비 점검을 하자. 60~70년대 동계 팀이 설악에 가서 힘들게 베이스를 구축하고 첫 취사도 못하고 전원 철수한 팀이 있었다. 폭설에 대원 한 두 명을 성냥 때문에 마을로 내려 보내지 못한 것이다. 벽 등반에서의 장비 하나가 치명적이 될 수 있다는 점 명심하자.

 

⑤ 전화기와 카메라는 충분히 충전이 되어 있는지 예비 배터리도 재확인하고 아무리 첨단 장비라도 간단한 내 연락처를 기계에 표시하자. 이름, 국적, 생년월일, 신고 받을 전화번호를 작은 종이에 써서 투명 테이프로 부착하자. 나를 살려줄 수 있고, 가족에게 흔적을 남겨 줄 수 있다.

 

⑥ 올라가는 산과 루트 명을 정확하게 외울 자신이 없다면 옷의 작은 주머니에라도 영문과 한글로 써서 꼭 보관하자.

 

⑦ 조난 신고는 확실히 하자. 산 이름, 루트 명, 장소, 인원, 상태,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주변 특이사항과 날씨까지. 사고가 난 순간부터 구조대도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다. 그런데 신고가 부적절하면 구조대는 출발을 못할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⑧ 구조대를 기다리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구조 사실을 정확히 알리고 최대한 도움받아라. 구조대가 오다가 다른 사고, 날씨로 지연이나 천재지변으로 못 올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라. 급하게 필요한 물, 비상식, 약품을 지원 받을 수 있다.

 

⑨ 구조대가 도착하면 최대한 지시를 따르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사람 살리는 게 직업으로 교육과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이다. 늦었다 해도 그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왔다.


⑩ 병원에 도착하면 아픈 곳을 과장해서라도 말이 안 통해도 강조해라. 응급실은 썰물처럼 환자가 밀려들 수 있고 병실로 옮겨지면 찬밥이 될 수도 있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리고 엄마는 우는 아이에게 먼저 젖을 물린다. 설사 언어장벽이 있어도 조난자를 다루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고 그것이 직업이다. 그들에게 잘 보여서 손해를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알프스 산군의 병원 근무 의사나 간호사들 중에는 우리보다 등반을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산악인으로 공부를 하고 산이 있는 곳으로 지원을 했거나, 지역출신 사람으로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친해지면 덕을 보는 게 상상을 초월한다. 병실에서 있는 동안은 모든 게 무료 수준이지만 퇴원하는 순간 처방 받던 약도 사야한다. 그들과 친해졌다면 퇴원하는 날 껴안으며 인사를 하고 나중에 옷이나 물품에서 귀한 약이 나올 때도 있다. 헤어질 때 묘한 미소를 보았다면 말이다. 그들에게는 창고의 소모품이고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다.


담당 의사와 인연으로 3일 만에 퇴원 당해

이번 내가 입원한 병실의 정형외과 의사는 토요일 헬기로 날아온 중환자를 화요일 오후에 퇴원시켜 버렸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 극히 사무적으로 만났던 그가 내 침대 옆의 책 한 권을 본 것이 주요인이었다. 월요일 프랑코 죤코가 아내와 문병 오며 선물로 주고 간 그의 저서로 알프스의 명 스키장과 산악 스키를 소개한 매우 큰 책이었다.

 

전날 의사 상담 시 화요일이나 수요일 못을 박는 수술을 하기로 했지만 오전 정기 순례 시간에 만나지 못했다. 점심이 지나 친해진 남자 간호사들에게 의사를 못 만나 수술 여부를 모른다고 했더니 3시가 넘어 의사가 내 방으로 와서 독대로 처음 만났다. 내가 간호사에게 따지지 않았다면 개인 미팅도 그 의사와의 인연도 끝이었다.


그가 책을 보며 산을 좋아하느냐 물었고, 산 스키도 하는가 물었기에 간단히 말하다 그와 10분 이상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어제 프랑코 죤코가 병원에 왔었다는 소문 들었는데…. 그는 클라이머로 암빙벽과 스키 등 전문 등반가였고 그의 친구들은 내가 거의 아는 사람들이며 스네이크 팀으로 활동하던 사람들, 자기도 스네이크 바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 전 색상 다 샀고 지금도 아껴 입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라스포르티바 로렌죠 사장의 사촌 동생이란 사실과 로렌죠의 병문안 문자가 온 이야기까지. 우리는 오랜 친구가 되어버렸다.

 

일반인 같으면 수술을 해서 뼈에 못을 박고 깁스를 한 달 정도하면 되나 내 경우 알피니스트로 오래 더 등반을 하려면 기본적인 석고 깁스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빠른 로보캅 스타일의 프로텍터를 사용하면 장착 후부터도 팔을 90~110도까지 움직일 수 있다며 사이즈를 체크하고 제품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다시 병원에 와서 설치 후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5월 13일과 30일 점검을 받으라고 귀가 조치되었다.

 

이제 한국인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이후 예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닌 가장 빨리 성장하고 세계에서 가장 테크니컬 사업이 성공한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가장 고성장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인정받는다. 여행이나 등반으로 해외를 다녀보면 돈을 잘 쓰는 손님으로도 대환영 받고 있다. 여행지에서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갈 경우에도 한국인하면 잘 살고 열심히 사는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등반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 우리가 배낭을 싸는 순간 이미 위험 조건이 따라 배낭 속에서 등반을 마치고 무사히 가족들과 만나 다시 배낭을 풀어 놓을 때야 그 위험도 나온다.

 

지난 3월 샤모니와 꾸르마이어에서 있던 황금피켈상에 초대받아 가서 심사위원들과 후보들과 산행시 우리 대한산악스키협회 산악스키팀을 만나 이틀을 같이 스키를 즐겼다. 정계조 위원장과 한영준 이사, 강정국 이사등 8명이 스키 등반 리드를 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돌로미테에서 2~3일에 한번 스키 업힐을 하니 여기서는 재미있는 벽에 스키를 신고 가서 믹스 등반을 하자”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한국 산 스키 상황 상 필요없는 장비이지만 여기에서는 필수 개인 장비인 빕스(눈사태시 조난자를 찾는 전자 센서 기계), 조난자를 찾는 침봉(텐트 폴 같이 휴대), 그리고 눈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장비 없이 스키와 스키폴, 스키 씰만 있다고 알프스를 헤집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거절했다.

 

우리 가족은 이태리 시민권자와 동등한 의료보험 혜택이 있어서 아내의 두 번 출산과 두 번의 중이염 수술을 모두 무료로 했다. 수술에서 입원까지 전액 보장이다. 이번 내 사고로 인한 병원비는 물론 헬기 구조비도 모두 무상처리 되었다. 볼자노 거주자가 볼자노 행정권내 사고이니 응급차가 가나 응급 헬기가 가나 같은 것이다. 내가 샤모니나 돌로미테나 어느 산에 가든 아내가 나에게 하는 인사말은 항상 같았다. “운전 조심해요.” 두 달 뒤 다시 산에 간다 해도 아내가 다른 말은 추가로 하지 않을 것 같다.


무사히 가족의 품에 돌아가는 것이 산행의 끝이다.

추락 시 분실한 보온병은 프랑코가 3km 아래에서 찾았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며 분실한 모자는 추락을 보고 제일 먼저 내려온 사람이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병원으로 가져다주었다. 단 며칠간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기적이었다. 그간 산행을 하며 너무 과신을 했다. 설사 스키 아이젠을 가져갔고 다른 사람들이 착용해도 그냥 간 적이 대부분이었고 착용해도 난 항상 제일 마지막에 착용했다. 이제는 남보다 먼저 경사와 눈 상태에 따라 제일 먼저 착용하고 선도 할 것이다.

 

혼자 좋다고 산에 갔다가 가족을 두고 혼자 산이 된다고 누가 찬양해주는 것 아니다. 듣지도 못하니 찬양이 아니다. 무사히 가족의 품에 들어가는 게 산행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도 말로만 척하고 다녔지 이렇게 뼈저리게 체험한 것은 처음이며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살아서 건강하게 가족들에게 돌아 가야 할 의무, 용기, 실력이 없다면 산에 가지 말자’가 아닌, ‘산에 갈 자격이 없다’는 점 명심하자.

 

<자료 인용 -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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